

에도 가부키의 제일인자인 초대 단주로의 소망
가부키 무대에 ‘시바라쿠’와 ‘나루카미’로 대표되는 용맹스러운 연출양식을 도입해 인기를 얻은 초대 단주로. 그러나 대를 이을 자식을 보지 못해, 나리타산의 당시 본당인 야쿠시도에서 일심으로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기원합니다. 그러자 경사스럽게도 기다리던 장남을 얻게 되었습니다.
부동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부자가 연기하는 <용사 곤겐소가>
초대 단주로가 나카무라 좌에서 부자가 공연한 <용사 곤겐소가>는, 부동님께 올린 기원이 성취되어 장남을 얻은 것에 감사를 표한 무대로, 부동명왕을 테마로 한 최초의 가부키였습니다. 이 무대가 엄청난 인기를 얻은 것에 감사하여 나리타산에 신령으로 모실 큰 거울을 봉납했습니다. 또한 이 공연을 계기로 이치카와 가(家)는 ‘나리타야’라는 옥호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나리타산의 에도 출개장의 시작, 갈채를 받은 <분신 부동>
나리타산이 에도 후카가와에서 실시한 최초의 출개장과 같은 시기에, 초대가 태장계 부동, 2대째가 금강계 부동을 연기한 <나리타산 분신 부동>이라는 가부키가 대단한 인기를 얻습니다. 나리타야 이치카와 단주로의 깊은 귀의와 부동님의 영험이 에도 전역에 널리 알려진 순간이었습니다.
나리타 부동님이 점지해 주신 아이로 알려진 2대째
2대째 단주로가 열 살에 첫 무대를 밟고 아역의 초석을 만듭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열일곱 살의 젊은 나이로 단주로의 이름을 이어 받습니다. 용맹스러운 동작부터 스케로쿠 같은 연애 장면까지 훌륭하게 연기해 ‘나리타 부동님이 점지해 주신 아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나리타산 부동님께 기원을 올려 병이 치유되다

아버지 못지 않게 깊은 부동존 신앙을 가진 2대째는 단주로의 이름을 계승한 해에 나리타산에서 단식 수행을 하여 연기의 향상을 기원했습니다. 또한 눈병이나 난치병에 걸렸을 때도 본존님께 빌어 치유했다는 영험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